New York Radio Korea
     
 
krb이진곤칼럼120130
  오디오 :    Date : 1/30/2012 11:46:57 AM   Hits 2167
 

krb이진곤칼럼120130 예정됐던 킹메이커들의 좌절

 

‘MB측근들의 몰락’, ‘고개 숙인 대통령의 남자들’, ‘정권 걸림돌이 된 킹메이커’. 이런 표현이 신문 큰 기사의 제목으로 자주 보이더군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들이 잇따라 정치적 또는 사법적 수난을 겪게 되면서 나오기 시작한 표현들입니다. 당사자들의 심정이 많이 착잡하리라 생각됩니다. 여론에 대한 원망이 크겠지만 자책하는 마음도 없지 않을 겁니다.

우선 박희태 국회의장의 경우입니다. 디도스 공격 사건에 박 의장의 비서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세인의 주목을 받았지요. 박 의장에게 까지 불똥이 튈 수도 있었는데 그 때는 용케 여론의 화살과 검찰의 수사에서 비켜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터진 ‘돈 봉투 폭로’에서 발목 잡히고 말았지요.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소속의원, 당협위원장 등에게 돈 봉투가 뿌려졌는데 그 출처가 당시 당 대표 경선에 나섰던 박희태 후보 측이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박 의장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일 때문에 4‧11총선 불출마 선언을 해야 했고 여전히 의장직 사퇴 압박을 여론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이상득 의원 쪽에도 갑자기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습니다. 이 의원은 이 대통령의 친형이지요. 6선 의원에 한나라당 최고위원 정책위의장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17대 국회에서는 부의장을 지냈을 정도로 정치 경력이 화려합니다. 다선의 고령의원인데다 친동생이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웬만하면 정계은퇴를 선언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원은 18대 총선 출마를 강행해 6선 의원이 됐습니다. 그 후에도 자중하는 모습 대신 정권 실세의 위상을 의식적으로 누리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영일대군으로 불리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보좌관이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의원은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고 결국 4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의원 자신은 돈과 관련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국민의 시선을 싸늘합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멘토로 유명하지요. 이상득 의원과 동향이자 서울대 동기이기도 합니다. 최 위원장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정치부장·논설위원으로 30년간의 기자생활을 마친 뒤 1994년부터 2007년 5월 퇴임하기 전까진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 회장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이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합류, 경선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큰 몫을 했다고 합니다. 그 공으로 2008년 3월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됐고, 작년에는 2기 위원장으로 연임됐습니다. 그만큼 대통령의 신뢰가 두텁다는 뜻이겠는데, 측근인사들이 비리의혹에 휩싸이자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역시 박수를 받으며 떠날 줄을 몰랐던 탓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대통령, 박 의장, 이 의원, 최 전 위원장과 함께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비공식 최고의사결정 기구였던 6인회 멤버로 활약한 인물이 김덕룡 전 대통령국민통합특보와 이재오 전 특임장관입니다. 이 두 사람의 위상이나 역할도 크게 위축됐습니다. 특히 이 전 장관은 한때 한나라당 친이계의 좌장, 정권의 실세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당내 소수파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 내외에 적이 많아 자주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요.

물론 나이가 많다고 정치적, 사회적 역할을 접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평균수명이 많이 늘어나서 이제 70대는 옛날처럼 상노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나이를 가지고 이들을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킹메이커로서 이들의 처신에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욕심을 약간 덜어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남다른 경륜과 학식을 가진 분들이 처세에서는 좀 모자랐던 것 같군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 할 말은 아닙니다만, 삶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철학의 빈곤 같은 것이겠습니다. 왜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하는지, 그 지위와 권세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를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다음 만족할 만한 답을 얻고서야 그 자리를 맡을 일이었습니다.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고,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그 직을 맡지 말았어야지요.

하긴 금의야행이라는 말이 있긴 합니다. 초패왕 항우가 한 말이라는데요, “성공을 하고도 고향에 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 주겠는가”라며 회군을 강행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른바 킹메이커들이라고 왜 욕심이 없겠습니까? 대통령을 만든 공을 세웠으니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랐겠지요. 그렇지만 그게 이분들의 한계입니다. 그 욕심을 넘어섰더라면 이들은 오래 국민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 겁니다. 금의환향에 마음이 바빴던 항우는 결국 패망하고 말았지요. 욕심만큼 큰 꿈을 갖지 못했던 탓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이 몰락하게 된 까닭도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100 자평  
0/200
bytes
100 자평은 로그인 후 등록됩니다.